전 포스트에 썼듯, 이탈리아 TV 방송국의 카라바지오에 대한 다큐를 보다가
그 다큐의 진행자인 미술사학자가 다른 이탈리아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진행한 미술 교양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3년 동안 진행된 프로로,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한 예술가/화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인터뷰 같은 것은 없고 작품을 시각 위주로 보여주고 내레이션이 깔끔해서 CC자막이 제대로 되었는지 살펴 볼 노력을 덜 해도 되는 점이 일단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청자로서 좋았다.
하지만 원어에서 번역어로 자막을 만드는 일은 음성을 맞춰 싱크하는 일이 꽤 노가다인 관계로 번역-교정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는 포스팅이 더 적어질 수밖에 없기에,
영상은 gif로 하이라이트만, 내용은 텍스트로만 옮겨 본다.
'아폴론과 다프네' (1622-1625)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빌라 보르게세)의 아폴론과 다프네를 클로즈업해 보여준 영상 일부분.
-이 곳은 내가 갔을 때에는 내부 촬영 불가였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방송에서는 실제로 관광객들의 틈 사이에서 차분하게는
찍을 수 없을 영상을 볼 수 있는 점이 좋다.
약간의 배경지식 먼저-
"아폴론과 다프네"는 베르니니의 큰 후원자 중 하나였던 추기경 (보르게세 가문의) 스키피오네 보르게세가 의뢰한 작품이다.
보르게세 가문은 원래 시에나 출신으로, 가문의 일원인 교황 바오로 5세가 교황으로 추대되면서 로마로 본거지를 옮기게 되고 스키피오네 보르게세는 교황의 조카로서, 추기경에 임명된다. 그리고 로마에 그의 예술품의 소장처로서 '빌라 보르게세'를 건축하는 것은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자신이 정한 과업이었다.
(베르니니가 조각한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흉상-1623년경 작품, 보르게세 미술관 소장)
알려진 대로 보르게세 추기경은 (꽤 탐욕스럽게) 많은 예술 작품을 수집했는데 이 에피소드는 그러한 추기경의 행동과 당시의 카톨릭 교회의 문화에 대한 비화를 담고 있다. 왜 '아폴론과 다프네'의 조각상 하단에 시가 새겨져 있는지 등등의 당대 문화적인 이유. 해설은 작품에 가장 관련한 이야기로 약간 요약, -습니다 체로 옮겼고 볼드체로 표시.
"폐하께서 다프네의 머리카락을 보실 수 있다면, 이와 같은 작업은 제게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 말은 1665년 여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명하며 부유했던 예술가였던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 대화는 베르니니가 프랑스 왕실의 대궁전인 루브르를 재건하는 일로 파리에 머물던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루브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으며, 이 실패는 이탈리아의 예술적 패권에서 프랑스의 예술적 패권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이후 예술 발전을 주도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예술의 중심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과 영국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말씀드린 이 대화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베르니니는 거의 70세였는데, 태양왕에게 자신이 25세에 조각했던 작품을 보았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베르니니가 25년 전에 사망했더라도, ’아폴론과 다프네‘를 작업하던 시점에 죽었더라도, 그는 미켈란젤로 이후 또는, 미켈란젤로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리석 조각가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보르게세 미술관 전시실에서의 전체적인 영상1)
'아폴론과 다프네' 조각상은 교황 바오로 5세의 조카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이 당시 젊은 베르니니에게 의뢰한 일련의 작품 중 정점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명백히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제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죠.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에 맞은 아폴론은 님프인 다프네에 욕망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다프네는 정절을 맹세한 상태였습니다. 아폴론은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뒤쫓지만, 다프네는 결국 이 모욕에서 벗어나기를 간청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비극적이고 가혹한 것으로, 다프네는 나무, 월계수 나무로 변하고 맙니다. 월계수는 이후 아폴론에게 신성한 나무가 되고, 시인들과 문학가들의 나무로 여겨지게 됩니다.
베르니니는 이야기가 절정에 달한 순간을 포착합니다. 아폴론이 다프네를 따라잡아 마침내 그녀를 붙잡았다고 믿는 순간입니다. 그는 그녀의 몸, 복부에 손을 얹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다프네는 입을 벌리고 절망적으로 외칩니다.
다프네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닌, 월계수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다른 장면들을 잇는 것입니다. 추기경 보르게세를 위해 베르니니는 “프로세르피나의 납치”를 조각했고, 이는 후에 추기경 루도비코 루도비시에게 선물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19세기 초부터 “플루톤과 프로세르피나”가 다시 빌라 보르게세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을 연속적으로 보지만, 사실 ‘아폴로와 다프네’는 ‘플루톤과 프로세르피나’를 어느 정도 대체하며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겁* 시도를 묘사한 것으로 이는 단순히 에로틱한 것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주제로, 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추기경의 집에서는 특히나 부조화스럽게 보였습니다.
( 언급된 “플루톤과 프로세르피나” 세부, 보르게세 미술관 소장의 베르니니 작품)
이 시기는 트렌토 공의회의 정신, 즉 종교개혁의 정신이 매우 멀어진 시점입니다. 로마의 팔라초 파르네세(Palazzo Farnese)의 천장에서 파르네세 추기경이 했던 작업을 본보기로 삼아, 추기경들은 초기 르네상스의 새로운 이교도적 분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로마는 마치 레오 10세 시대, 즉 16세기 초반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베르니니는 그 누구보다도 이 새로운 이교도적 행복감을 표현할 줄 알았습니다. 이는 육체적이고 에로틱한 행복감이었습니다.
(언급된 파르네세 궁전의 천장화, 제작연도 약 -1608년.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의 프레스코화 작품.
'신들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화적 장면을 담고 있으며, <변신 이야기>에 기반한 지상의 사랑과 신성한 사랑의 다양한 해석을 보여준다. 카라치는 이 작품에서 quadro riportato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천장에 마치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보이도록 했다.)
베네데토 크로체는 이 시기에 쓰인 17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서사시, 마리노의 ‘여인들’에 대해 글을 쓰며, 당시 젊은 독자들의 욕망과 감정을 마리노처럼 풀어낸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마리노의 여인들과 베르니니의 “아폴론과 다프네”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공통점 중 하나는 끔찍한 결말을 맞을 위험성입니다.
‘아폴론과 다프네’는 마리노의 ‘여인들’이 겪었던 운명, 즉 금지 작품 목록에 오른 운명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라틴어 시인이기도 했으며 마리노를 경쟁 상대로 여긴 피렌체 출신 추기경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후에 교황 우르비노 8세가 됨) 마리노의 걸작을 금지 작품 목록에 올리고 비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시는 오직 신성한 주제를 다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아폴론과 다프네’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로마나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고, 특히 엄격하고 영적인 프랑스 출신 추기경이 ’아폴론과 다프네‘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합니다.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같은 추기경이 이런 장면의 묘사를 집에 두고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언급된, 이 프랑스 출신의 추기경에 대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이미지가 소수 있다.
그 중에는 베르니니의 조각상이 있다.)
(역시 베르니니가 조각한, 프랑스 추기경 에스쿠블로 드 수르디스(1574-1628)
선량한 프랑스 추기경 에스쿠블로 드 수르디스(1574-1628)를 걱정하게 만든 것은 소녀의 몸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나체의 소녀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거나 흥분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스키피오네 보르게세의 취향은 아폴론 쪽에 가까웠는데, 만약 프랑스의 동료가 이를 알았다면 더욱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 작품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당시에는 교황이 되기 전으로 아직 추기경이었던)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라틴어 시를 지었고, 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쾌락을 쫓는 자는 도망치는 형상을 쫓게 된다; 결국 손에는 쓴 월계수 열매만 남게 될 것이다." 이 구절에는 페트라르카적인 정취가 담겨 있으며, 이는 사랑과 월계수(영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이 조각상을 정의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도망치는 형상." 베르니니가 대리석을 공격하고 하나의 돌 덩어리를 두 인물이 숨 가쁘게 달리는 모습으로 바꾸는 놀라운 기술적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조각상의 받침대에 새겨졌으며, 어느 정도 위선적인 도덕적 베일 역할을 하여 스키피오네 보르게세가 이 작품을 덮어두지 않고 소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키피오네 보르게세가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기초에서 발견된,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였던 기묘한 존재인 헤르마프로디토스 조각상을 구입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은 남성이고 반은 여성인 그리스 신화의 존재,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이 조각상엔 많은 복제품이 있으며 이 작품은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후에 1800년대 루브르가 소장하게 되었다.)
카멜회 수도사들은 경악하며 이를 팔았고, 추기경은 이를 가져와 베르니니가 조각한 멋진 매트리스 위에 눕혔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상자 안에 가려져 있었고, 양심적이지 않은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스키피오네 보르게세는 심지어 헤르마프로디토 옆에 실제 소파를 만들어 두고 혼자서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의 홈페이지에서 첨부.- 베르니니가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의뢰로 이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전시해 놓을 매트리스를 60 스쿠디를 받고 대리석으로 조각했다는 정보를 알려 준다.)
반면 ‘아폴론과 다프네’는 상자로 덮이지 않았으며, 단지 라틴어 시라는 다소 위선적인 베일로 가려졌습니다. 이는 "당신들이 쾌락으로 향하는 질주를 보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쾌락을 포기하라는 권유로 상상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해석은 매우 멀게 느껴지며, 우리는 단지 젊은 베르니니가 열정과 에로틱한 욕망의 힘을 표현하는 놀라운 능력을 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일종의 작별 인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황 덕분에 베르니니는 구제되었지만 더 이상 그의 긴 경력 동안(베르니니는 80세 이후에 죽었습니다) 세속적이고 에로틱한 주제를 다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 테레사”,
('성 테레사의 환희', 1647–1652,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제작 당대에 성녀 테레사를 역시 속적으로 표현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급된 것처럼 교황 우르비노 8세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긴 경력을 지속했다.)
그리고 모든 성스러운 인물들을 보면, 욕망과 열정 속에서 뒤틀린 신체 표현이 지하수처럼 숨어 있지만 여전히 그의 대단한 조각 작품들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지난번에 포스팅한, 로렌초 로토의 작품에 대한 해설 글은 아래에 링크. 티스토리 예전에는 20mb 이상의 이미지 파일도 올릴 수 있었는데 용량이 줄어서 용량 오버인 gif파일 등은 못 올리는 점이 아쉽지만.
https://vs-diaries.tistory.com/4
로렌초 로토의 <수태고지>에 대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의 해설
올해 본 이 이탈리아의 TVLoft라는 스트리밍 매체의 컨텐츠에 대해서는 어느 블로그에든 포스팅할 생각이 없었다. 이 서비스는 이 미술사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구독했다. (한 달 3.99유로)넷
vs-diarie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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