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본 이 이탈리아의 TVLoft라는 스트리밍 매체의 컨텐츠에 대해서는
어느 블로그에든 포스팅할 생각이 없었다. 이 서비스는 이 미술사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구독했다. (한 달 3.99유로)
넷플릭스와 MUBI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마 스트리밍 서비스는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고 해야겠지만,
그냥 혼자 보고 말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봤으니 몇 몇 에피소드만 백업용으로 기록해둘까 한다.
이탈리아의 미술사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보기 위해 한동안 이탈리아어 공부를 한 것이 아깝다는 생각도 있고.
이 Favole Forme Figure라는 프로그램은 한 화 10분 정도의 영상으로, 미술사학자가 한 예술가/화가의 작품에 대해
일반 교양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 또 약간의 사회 배경에 대한 코멘트를 더해 설명하는 프로라 할 수 있다.
제목은 '이야기, 형태, 형상'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
이 로렌초 로토(Lorenzo Lotteo, 1480-1556)의 수태고지(약 1527년경)에 대한 내용은
2018년의 7번째 에피였다. 약간 특이한 수태고지 회화로 평가되는 이 작품에 대해 어쨌든 관람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 준다.
영상 하이라이트를 짧게 줄인 gif와 배경 작품 사진을 곁들여 한국어로 옮긴 진행자의 해설을 붙인다.
영상 번역 자막을 만드는 것은 번역 자체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취미 블로깅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의 문제도 있지만)
번역은 AI의 도움을 받았다. AI들의 번역의 차이는 아마 이용자를 조금 오히려 더 곤란하게 만드는 면이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차치하는 편이 좋겠다.

영상 오프닝은 이런 식이다.

로렌초 로토: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저명한 일원으로 비순응적인 성격으로 인해 배경으로 물러나 있었다.
1537년, 뛰어난 언론인이자 논객이며 예술 애호가였고 위대한 감식가, 또 무엇보다도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빛나는 지성과 필력을 가진 인물 중 하나였던 피에트로 아레티노는 그 자신에게나, 일반적인 이탈리아인의 성격, 그의 시대를 고려해도 드문 고찰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약 우리 시대가 아름다운 만큼 선하다면, 정말로 과거의 어떤 시대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선함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름다움의 수사학,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이 상업적이고 만연한 수사학은 종종 그 세대와 그 사람들이 인간성이라는 개념과 맺었던 관계를 잊게 만듭니다. 또한 인간 존재의 내면 깊숙이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성찰과 서사를 잊게 만듭니다.
아레티노는 당시 형식에 매료된 상태에서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부족한 선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화가들,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베네치아 회화의 거장인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면—아레티노는 생애 대부분을 베네치아에서 살았습니다—올림포스 신화적인 완벽한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종종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들로부터 멀어진 차갑고 거리감 있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나이 든 티치아노는 달라지겠지만 젊은 티치아노는 어떤 면에서는 차가운 별과도 같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티치아노 청년기의 대표작, L’Amor sacro el’Amor profano (성애와 속애,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소장))
아레티노가 이러한 생각을 하며 한 번쯤은 또 다른 베네치아 화가인 로렌초 로토를 옹호했으리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로렌초 로토는 결국 패배자였습니다. 그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 후원자들을 위한 대규모 의뢰 작업이 아니라 베네치아 문화권의 아드리아해 연안의 지방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이 지방은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인들이 지진으로 인해 그 지역이 사라질 위험이 있을 때만 기억하는 곳이죠.
로토(Lotto), 그러니까 로렌초 로토(Lorenzo Lotto). 아레티노가 그러한 생각을 적던 바로 그 시기에 로렌초 로토는 레카나티 상인 형제단 교회를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곳은 모두가 주로 자코모 레오파르디와 연관 짓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어쩌면 어린 시절 레오파르디 자신도 몇 번이고 보았을 법한 그림일 것입니다. 서구의 도상학에서 가장 자주 다뤄지고 널리 퍼진 주제 중 하나를 나타낸 그림: "수태고지"입니다.

“수태고지”는 기독교 신학과 복음서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성육신(incarnate)하는 순간이며, 성모 마리아의 동의—즉 그녀의 “네”가—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 성육신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 순간은 수천 번이나 재현될 정도로 굉장히 많이 묘사되었습니다.
중세 설교자들과 르네상스 시대 설교자들은 “수태고지”라는 짧지만 긴박한 이야기를 여러 순간으로 나누어 설교하곤 했습니다. 로렌초 로토는 마리아의 “수태고지”를 이전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분명히 플랑드르 회화와 실내 장면을 묘사하는 회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이 회화는 사물과 환경에 초점을 맞추며 정확한 사물 묘사를 통해 장면의 도덕적·인간적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로토는 성모 마리아의 방을 기존 화가들과는 반대로 상상했습니다. 그림에는 전형적인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큰 문과 창문이 정원으로 열려 있고 이는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닫힌 정원”입니다. 명상과 기도에 몰두하며 남성을 알지 못했던 소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문을 받습니다.

정원에는 이상한 모습이 보입니다—구름 위에서 빨간 옷을 입고 합장한 채 다이빙하듯 뛰어드는 노인의 모습입니다. 마치 오늘날의 만화에서 수영장에 뛰어드는 소년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로서 그의 장엄한 존재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마리아의 자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이는 성육신 그 자체이며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작품 세부)
로토는 방 안에서 여성의 일상적인 물건들—양초, 시계, 모래시계가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시간이 나뉜다는 개념을 상징하며 인간 역사가 성육신 전후로 나뉠 것임을 나타내죠, 쿠션들, 캐노피가 드리워진 침대 등—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준 세부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고양이입니다.

이 고양이는 놀라서 등을 구부리고 뛰어오르는 모습인데 이는 고양이가 마리아의 방에 천사가 들어왔음을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순수한 영혼이라기보다는 건장하고 운동선수 같은 젊은 남성으로 묘사됩니다—실제 육체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천사가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입니다. 이는 순수한 영혼이어야 할 천사가 육체성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불안, 이 두려움, 이 고양이의 놀람은 단지 상징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이 장면의 신학적 의미를 읽어내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죠) 마리아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나타냅니다. 로토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선량한 사람이었으며, 아마 13세쯤 되었을 소녀의 감정 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그 소녀는 한 소년이 방에 들어와 "너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에서 성모 마리아는 특이한 행동을 합니다. 즉, 천사 쪽을 바라보지 않고 바깥쪽을 향해 몸을 돌립니다. 그녀는 천사를 보지 않습니다. 그녀는 도망가려 하고 있으며, 수용을 의미하지는 않는, 손을 펼치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바로 얼마 후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며 수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움,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바라봅니다. 우리와 공모하려고, 지지를 구하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우리를 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문자 그대로 우리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우리는 그 방 안에 있으며,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을 보게 됩니다. 단지 매우 아름다운 것들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마음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우리는 그녀의 ‘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됩니다. 몇 분 후 그녀가 말할 ‘네’가 우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녀는 우리를 위해 그 말을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바치며, 모든 이들을 위해서 합니다.
로토는 이 신학적 진리, 즉 카톨릭 신앙의 깊은 기반을 전달하는 데에 능숙합니다. 이 진리는 모든 설교자들의 교리에 따른 해석이 아닌, 아주 어린 청소년 또는 사춘기 이전의 소녀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으로서 설명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이렇게 놀라운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로렌초 로토의 진정한 재능입니다. 이 놀라운 방, 즉 내부의 그림은 단순히 장소의 내부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영혼을 나타냅니다. 성모 마리아의 영혼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포함되는 것이죠.
로렌초 로토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위대한 16세기-는 아름다움의 곁에 선함 또한 찾게 되었습니다.
10분여이지만 꽤 전달력이 높고 언어 사용이 깔끔하고 명쾌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었다.
다음에도 한 두 편은 내용을 정리하는 포스트를 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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